대학 통폐합은 숫자가 아니라 운영모델의 문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9월 22일 공개한 KEDI Brief 제18호는 대학 통폐합을 꽤 불편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통폐합 직후 입학경쟁률은 오르고, 신입생 충원율도 조금 개선된다. 입학정원과 재학생 수는 줄어든다. 여기까지만 보면 통폐합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꽤 효과적인 처방처럼 보인다.
그런데 진짜 질문은 그다음에 나온다. 통합 직후 줄었던 비전임교원과 학과 수가 시간이 지나며 다시 늘어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이것을 “단기 감축, 장기 재팽창”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컨설팅 관점에서 보면 이 대목이 핵심이다. 통폐합은 학교 이름표를 합치는 일이 아니라, 통합 이후 [[대학 운영모델]]을 어떻게 다시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오늘의 핵심
- KEDI Brief 제18호는 2000년부터 2026년까지 확인되는 대학 통폐합 37건 가운데 분석 가능한 27건을 대상으로 통폐합 전후 변화를 실증 분석했다.
- 통폐합 직후 입학경쟁률은 1.66 상승했고, 신입생 충원율도 2.51%p 개선됐다. 외국인 유학생 수도 직후 약 99명 늘고 이후 매년 약 35명씩 증가했다.
- 반면 통합 직후 줄었던 비전임교원 수와 학과 수는 이후 다시 증가했다. 학과 수는 통폐합 이후 연평균 0.7개씩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이 결과는 “통폐합을 하면 대학 경쟁력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읽으면 안 된다. 더 정확하게는 통폐합이 외형 지표를 개선할 기회는 만들지만, 내부 구조를 계속 바꾸는 장치가 없으면 대학은 다시 예전의 관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에 가깝다.
왜 대학전략 관점에서 중요한가
대학 통폐합 논의는 보통 세 가지 숫자로 흘러간다. 몇 개 대학을 줄였는가. 입학정원을 얼마나 감축했는가. 재정지원은 얼마나 붙는가. 하지만 이번 KEDI 분석은 숫자만으로는 통폐합의 성패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입학정원 감축은 비교적 빠르게 할 수 있다. 행정 절차와 모집 단위 조정으로 눈에 보이는 숫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과, 교원, 직원, 캠퍼스 기능, 자산, 의사결정 구조다. 이 영역은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지역사회의 요구가 직접 걸려 있다. 그래서 통합 직후에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전공 수요, 캠퍼스 존치 논리, 부서별 생존 전략이 맞물리며 다시 팽창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통폐합은 [[학사구조 개편]]의 문제가 된다. 유사 학과를 없앴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남은 학과들이 어떤 교육과정으로 연결되는가다. 두 캠퍼스가 같은 전공을 나눠 갖는지, 한쪽은 기초·교양과 전공탐색을 맡고 다른 한쪽은 실험·실습·산학 프로젝트를 맡는지, 혹은 지역산업과 연계한 전공 클러스터로 재배치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책·교육과정·지역연계 포인트
첫째, 일원화 통폐합과 이원화 통폐합은 같은 정책으로 다루기 어렵다. KEDI는 캠퍼스 유지 여부에 따라 일원화 통폐합과 이원화 통폐합을 구분했다. 일원화 통폐합은 경쟁률 상승과 규모 감축 효과가 비교적 뚜렷했지만, 이원화 통폐합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다. 이원화 통폐합은 실패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평가 기준이 달라야 한다. 캠퍼스를 유지한다면 단순 감축보다 캠퍼스별 기능 특성화, 교육과정 공동 운영, 행정조직 통합, 지역 접근성 유지가 핵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
둘째, 통폐합은 글로컬대학30이나 ANCHOR(RISE)와 연결될수록 더 어려워진다. 지역혁신 사업은 대학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인재·산업·정주 구조를 다시 짜는 정책이다. 통폐합 대학이 지역의 성장엔진을 맡겠다고 한다면, 어느 캠퍼스가 어떤 산업과 연결되는지, 학생이 어떤 프로젝트를 거쳐 지역 기업·기관으로 이동하는지, 졸업 후 지역정주로 이어지는 경로가 무엇인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셋째, 통폐합 이후의 성과관리는 입학지표만으로 부족하다. 경쟁률, 충원율, 정원 감축은 필요한 지표지만 충분하지 않다. 대학 내부의 중복 학과 조정, 전공 간 공동 교육과정, 행정조직 통합, 자산 활용, 산학 프로젝트, 학생 경로, 지역사회 기여를 묶는 실행지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표는 1년짜리 보고서가 아니라 매년 수정되는 성과환류 체계로 관리되어야 한다.
학생·학부모가 확인할 것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도 통폐합은 “대학 이름이 커졌는가”만 볼 일이 아니다. 통합 대학의 홍보 문구보다 아래 질문이 더 실질적이다.
- 내가 입학할 학과가 통합 이후 어느 캠퍼스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가.
- 전공 이동, 복수전공, 융합전공, 마이크로디그리 같은 선택권이 실제 시간표와 졸업요건에 반영되어 있는가.
- 통합 전후로 실습실, 연구장비, 도서관, 기숙사, 통학, 학생지원 서비스가 어떻게 바뀌는가.
- 지역 기업·기관과의 산학협력이 단순 협약인지, 현장실습·캡스톤·채용연계·창업지원으로 이어지는지.
- 학생이 졸업 전에 보여줄 수 있는 학생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는 구조인지.
통폐합 대학은 대체로 “더 큰 대학”, “더 강한 대학”이라는 언어를 쓴다. 하지만 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경로다. 학과가 줄었는지 늘었는지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습경로와 진로경로가 더 선명해졌는지를 봐야 한다.
대학컨설팅 관점에서 보는 전략
대학은 통폐합을 구조조정 이벤트로 끝내면 안 된다. 통폐합이 승인되고 교명이 바뀌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오히려 그때부터 3년이 중요하다. 통합 직후에는 조정 효과가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학과와 인력이 다시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학컨설팅 관점에서 통폐합 대학이 먼저 잡아야 할 것은 네 가지다.
첫째, 캠퍼스 기능지도다. 각 캠퍼스가 무엇을 맡고 무엇을 맡지 않을지 명시해야 한다. “모든 캠퍼스가 모든 것을 조금씩 한다”는 방식은 갈등을 줄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복 비용과 낮은 식별성을 만든다.
둘째, 교육과정 재배치 원칙이다. 학과명을 기준으로 통합하면 기존 조직을 봉합하는 데 그친다. 직무역량, 기초역량, 지역산업, 연구·실습 인프라를 기준으로 교육과정을 다시 묶어야 한다.
셋째, 통합 성과 대시보드다. 정원 감축, 충원율, 취업률 같은 기본 지표에 더해 공동 교육과정 이수율, 캠퍼스 간 학점교류, 산학 프로젝트 참여, 지역기관 연계, 학생 포트폴리오 산출물, 행정 통합 비용 절감 같은 지표가 들어가야 한다.
넷째, 구성원 협상 구조다. 통폐합의 어려움은 분석 부족보다 합의 부족에서 온다. 학과, 교원, 직원, 학생, 지역사회가 각자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통합 이후에도 조직은 느슨한 연합체로 남는다.
결론은 단순하다. 대학 통폐합의 성과는 “몇 개를 줄였나”가 아니라 “무엇을 다르게 운영하게 되었나”에서 나온다. 이제 통폐합은 대학 구조개혁의 숫자가 아니라 대학경영의 실행 설계로 읽어야 한다.
확인한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보도] 대학 통폐합, 무엇을 바꾸었나」, 2026.09.22. https://www.kedi.re.kr/khome/main/announce/selectBroadAnnounceForm.do?selectTp=0&board_sq_no=3&article_sq_no=3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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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 「[2026년 18호 김택형] 대학 통폐합, 무엇을 바꾸었나?」, KEDI Brief, 2026.09.22. https://www.kedi.re.kr/khome/main/research/selectKediBriefForm.do?selectTp=0&board_sq_no=41&article_sq_no=36498 - 한국대학신문, 「“대학 통폐합, ‘몇 개 줄였나’ 보다 ‘어떻게 바뀌었나’에 집중해야”」, 2026.09.22.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7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