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많이 만들수록, 사람의 취향이 더 중요해진다
AI 도구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이제 “생성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Claude Code, Cursor, Codex 같은 도구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코드를 쓰고, 화면을 만들고, 문서를 정리하고, 작은 앱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열어줬다. 예전에는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과 반복 수정으로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
무언가 많이 만들어지는데, 결과물이 점점 비슷해진다. 카드가 있고, 그라데이션이 있고, 둥근 버튼이 있고, “깔끔한 SaaS 랜딩페이지” 같은 화면이 반복된다. 문장도 비슷하다. “seamless”, “unlock”, “empower”, “transform”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구조도 어딘가 익숙하다.
이걸 요즘은 흔히 AI slop이라고 부른다. AI가 만든 저품질 대량 생성물, 혹은 그럴듯하지만 개성이 없고 책임 있게 다듬어지지 않은 산출물이라는 뜻이다.
며칠 전 GitHub Trending에 올라온 Hallmark라는 프로젝트가 이 문제를 아주 직접적으로 건드렸다. 저장소 설명부터 선명하다.1
Anti-AI-slop design skill for Claude Code, Cursor, and Codex.
README의 첫 문장도 좋다.2
A design skill for Claude Code, Cursor, and Codex that refuses to look AI-generated.
AI가 만든 것처럼 보이기를 거부하는 디자인 스킬.
이 문장이 지금 AI 도구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제 사람들은 AI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에 감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이거 AI가 대충 만든 티 안 나게 할 수 있나?
생성 능력은 빠르게 흔해진다
생성형 AI 초기에는 “AI가 이걸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글을 쓰고, 코드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발표자료를 구성하는 능력이 새로운 충격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않는다.
모두가 비슷한 도구를 쓰기 시작하면, 생성 능력은 차별점이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누구나 랜딩페이지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이메일 초안을 만들 수 있고, 누구나 간단한 웹앱을 만들 수 있다면, 질문은 바뀐다.
“만들 수 있나?”가 아니라 “좋은가?”가 된다.
이때부터 중요한 능력은 프롬프트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결과물을 보는 눈이다. 무엇이 흔한지, 무엇이 어색한지, 무엇이 브랜드와 맞지 않는지, 무엇이 사용자에게 실제로 읽히는지, 무엇이 그저 AI가 자주 내놓는 평균값인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Hallmark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Claude Code, Cursor, Codex 같은 AI 코딩 도구에 붙는 디자인 스킬을 표방한다. README에 따르면 Hallmark는 brief에 맞는 macrostructure를 고르고, 20개 theme 중 하나를 입히고, 57개의 slop-test gate와 사전 self-critique를 거친다고 설명한다.2
중요한 건 숫자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AI 결과물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보내기 전에 “AI스러운 기본값”을 의심하는 절차를 넣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AI slop은 단순히 못생긴 결과물이 아니다
AI slop을 단순히 “못생긴 디자인”이나 “이상한 문장”으로만 보면 문제를 작게 보는 것이다.
AI slop의 본질은 평균값의 과잉이다.
LLM은 훈련 데이터에서 많이 본 패턴을 잘 재현한다. 그래서 특별한 제약 없이 “멋진 랜딩페이지 만들어줘”라고 하면, 대체로 많은 랜딩페이지의 평균처럼 생긴 결과가 나온다. “전문적인 블로그 글 써줘”라고 하면, 대체로 전문적으로 보이는 평균 문장이 나온다.
문제는 평균이 나쁘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 보면 꽤 괜찮아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조악하면 바로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럴듯하면 통과된다. 대충 봐도 말이 되고, 화면도 그럴싸하고, 구조도 있어 보이면 사람은 쉽게 넘어간다. 그렇게 평균값이 그대로 배포된다.
이게 쌓이면 웹은 비슷한 문장, 비슷한 카드, 비슷한 CTA, 비슷한 대시보드, 비슷한 블로그 글로 채워진다.
AI slop은 품질 문제가 아니라 분별력 문제다.
취향은 사치가 아니라 필터다
나는 AI 시대에 “취향”이라는 말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본다.
여기서 취향은 단순히 예쁜 것을 좋아하는 감각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필터링 능력이다.
- 이 문장이 내 목소리와 맞는가?
- 이 화면은 사용자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가?
- 이 디자인은 너무 흔한 AI SaaS 템플릿처럼 보이지 않는가?
- 이 구조는 문제를 해결하는가, 아니면 있어 보이기만 하는가?
- 이 산출물을 내가 이름 걸고 공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취향이다.
AI가 더 많이 만들수록, 사람은 더 많이 고르게 된다. 그래서 취향은 장식이 아니라 운영 체계가 된다. 생성물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통과시키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다시 시킬지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AI 리터러시도 결국 여기까지 와야 한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만든 결과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고칠 것인가, 어디서 사람의 판단을 넣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편집장이 사라지면 AI slop이 쌓인다
나는 이전에 LLM Wiki가 쉽게 썩는 이유를 쓰면서, AI가 관리하는 지식베이스에도 사람이 넣어야 할 방부제가 있다고 썼다. 핵심은 결국 사람이 편집장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과 코드도 마찬가지다.
AI는 초안을 만들 수 있다. 구조를 제안할 수 있다.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최종 산출물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는 편집장 역할까지 사라지면, 산출물은 빠르게 AI slop으로 흐른다.
AI 코딩 도구가 강해질수록 이 문제는 더 커진다.
예전에는 못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산출물의 양이 제한됐다. 이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산출물의 양은 늘어난다. 하지만 많이 만들어진다고 좋은 것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수되지 않은 평균값이 더 많이 쌓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사람은 단순 사용자나 프롬프트 작성자가 아니다.
필요한 사람은 편집장이다.
편집장은 AI에게 일을 시킨다. 하지만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는다. 결과물을 읽고, 비교하고, 지우고, 다시 시키고, 기준을 세운다. 어떤 결과는 “괜찮다”고 통과시키고, 어떤 결과는 “그럴듯하지만 별로다”라고 막는다.
이 판단이 없으면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노이즈를 늘린다.
좋은 AI 도구는 더 많이 만들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Hallmark 같은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건, AI 도구의 다음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기 AI 도구는 “만들어준다”에 집중했다. 글을 만들어준다. 코드를 만들어준다.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화면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AI 도구는 “그럴듯하지만 별로인 것을 피하게 한다”로 간다.
이건 작지만 중요한 차이다.
예를 들어 좋은 AI 디자인 도구는 단순히 예쁜 색을 추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흔한 구조를 피하게 하고, 브랜드와 맞지 않는 스타일을 버리게 하고, 너무 익숙한 SaaS 패턴을 의심하게 하고, 결과물마다 다른 형태를 찾게 해야 한다.
좋은 AI 글쓰기 도구도 마찬가지다. 더 긴 글을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AI 문체를 걷어내고, 글쓴이의 관점을 살리고, 불필요한 수사를 줄이고, 문장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게 해야 한다.
좋은 AI 코딩 도구도 마찬가지다. 코드를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실패 조건을 드러내고, 테스트를 돌리고, 보안 리스크를 잡고, 유지보수 가능한 구조로 정리하게 해야 한다.
결국 좋은 AI 도구는 생성기가 아니라 검증과 편집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차별화는 taste layer에서 난다
앞으로는 많은 제품과 콘텐츠가 AI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질 것이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날까?
나는 taste layer에서 난다고 본다.
모델은 점점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다. 도구도 빠르게 복제된다. 어떤 기능이 한 제품에 들어가면 곧 다른 제품에도 들어간다. 그러면 최종 차이는 다음 질문에서 난다.
- 무엇을 만들라고 시키는가?
- 무엇을 만들지 말라고 막는가?
- 어떤 결과를 통과시키는가?
- 어떤 결과를 촌스럽다고 판단하는가?
- 어떤 산출물을 자기 이름으로 공개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 레이어는 완전히 자동화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취향은 맥락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의 브랜드, 어떤 독자의 기대, 어떤 사용자의 문제, 어떤 글쓴이의 목소리, 어떤 제품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물론 AI도 취향을 흉내 낼 수 있다. Hallmark처럼 디자인 DNA를 추출하고, slop-test를 돌리고, theme을 바꾸는 도구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도구를 어떤 기준으로 쓰고, 언제 결과를 거절할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가 사람의 취향을 대체한다기보다, 사람에게 더 선명한 취향을 요구하게 된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이 변화는 교육에도 시사점이 있다.
AI 교육을 “프롬프트 잘 쓰기”로만 가르치면 부족하다. 앞으로 필요한 교육은 생성 이후의 교육이다.
- AI 결과물을 비교하는 법
- AI 문체를 걷어내는 법
- 그럴듯한 평균값을 알아보는 법
- 출처와 실행 결과를 검증하는 법
- 자기 관점과 목소리로 다시 편집하는 법
- 무엇을 AI에게 맡기지 않을지 정하는 법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이제 생성 자체는 쉬워진다. 어려운 것은 생성 이후다.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다시 만들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AI 리터러시는 “AI를 쓸 줄 아는 능력”에서 “AI 산출물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으로 이동해야 한다.
결론: 많이 만드는 사람보다 잘 버리는 사람이 중요하다
AI는 우리를 더 많이 만들게 한다. 글도, 코드도, 이미지도, 화면도, 기획안도 더 빨리 만든다.
하지만 더 많이 만든다는 것은 곧 더 많이 버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리지 못하면 AI slop이 쌓인다. 평균적인 문장, 평균적인 화면, 평균적인 코드가 쌓인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체성이 흐려지고, 품질이 낮아지고, 검증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AI 시대의 실력은 생성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능력에서 결정된다.
이건 AI가 만든 티가 난다.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
이건 예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건 그럴듯하지만 버려야 한다.
AI가 많이 만들수록, 사람의 취향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AI 사용자는 더 많이 생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정확히 고르고 더 과감히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